영화 서텨 아일랜드의 거의 마지막 부분 장면이죠.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저 대사가 얼마나 의미심장한 것인지 와 닿으실겁니다. 영화를 안 보신 분을 위해 간단한 줄거리를 말씀드리면, 정신병을 앓고 있는 범죄자들을 구속하고 있는 섬이 있습니다. 교도소이자 정신병원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는 섬인거죠. 그런데 이 섬에서 어떤 여자 환자가 행방불명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연방수사관이 이 섬에 조사차원으로 방문하면서 영화가 시작합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 섬이 단순히 정신병 범죄자를 수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 위협적인 인물을 가둬놓고 전두엽 절제술을 시행해 폐인으로 만들어 관리하고 있는 듯한 정황들이 드러납니다. 이 이후의 줄거리는 스포일러에 해당되니 영화를 직접 보시길 권합니다. 마틴 스콜시지가 만들어 낸 장면에 디카프리오의 훌륭한 연기가 잘 어우러진 영화입니다.

위 영화의 배경은 1950년대 미국인데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정신병 또는 신경병을 치료한다는 목적으로 두뇌의 일부를 절제하는 경우가 실제로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간질(지금은 뇌전증으로 이름이 바뀐)을 치료하기 위해 측두엽, 해마 등을 절제하는 수술적 치료인데요. 이 치료법은 아직도 약물로 조절되지 않는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전기적 발작이 시작되는 부분을 전극으로 찾아 내어 그 부분만 잘라내지만, 1950년같은 옛날에는 앞뒤 잴거 없이 그냥 해마나 측두엽 전체를 제거했습니다.

(출처:wikipedia, 이렇게 해마처럼 생겼다고 해서 해마라고 이름 붙여진 그 곳)

그런 시절에 아주 심한 뇌전증을 앓았던 환자가 있었습니다. 1926년에 태어난 Henry Molaison이라는 사람인데요. H.M.이라는 이니셜로 더 유명하죠. 예 맞습니다. 양쪽 해마를 절제해서 단기기억상실증을 앓게 된 사람이죠. 여기서 영화 메멘토를 떠올리시는 분도 많으실겁니다.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새로운 정보나 인물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하지 못 하고 금방 잊어버리는 증상을 앓게 된거죠. 1953년에 해마절제술을 시행했다고 하는데 그 보다 예전 기억은 잘 기억하고 있었던 반면, 1953년 이후에 일어난 일들은 거의 기억하지 못 했다고 합니다. 단, 절차기억(자전거타기, 수영하기 등등)은 남아있는 상태일 뿐만 아니라, 새로 배울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H.M.의 케이스가 과학계에 보고되자 많은 사람들이 기억에 관한 연구를 하기위해 H.M.을 테스트했고, 심리학 신경과학 역사에 잊혀질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H.M.의 케이스는 이후 동물 실험을 하는 연구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서 쥐나 토끼의 해마 기능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이번에 노벨상을 받은 O'keefe였죠. 

(출처: http://robertchaen.com/2014/10/08/6970/, 흰수염이 멋있으심)(출처: http://berkelab.org/BerkeLab/Techniques.html, 신경세포의 전기적 신호기록을 위해 머리에 전극을 설치해놓은 쥐의 모습입니다.)

O'keefe 교수는 당시 위의 오른쪽 사람처럼 쥐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해마에 전극을 꽂아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하며 신호를 기록했는데요. 쥐의 해마는 사람의 해마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좋은 위치에 있기도 했고, H.M.에 대한 보고도 있었으니 열심히 실험하고 연구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 결과 O'keefe 교수는 해마가 뇌의 인지적 지도에 해당되는 부위라는 가설을 뒷받침할 만한 연구결과를 내놓게 됩니다. 그게 바로 이번 노벨상 업적이기도 한 장소세포, place cell의 발견입니다.

쉽게 말해 장소세포는 어떤 환경에 개체가 노출되었을때, 주변 환경에 대한 cue나 정보를 인식해서 어느 특정 부분에서만 활성화되는 세포라는 것이죠. 쥐로 치면 

(출처:http://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0014488676900558, Place units in the hippocampus of the freely moving rat, O'keefe, 1976, Experimental Neurology)

 위와 같은 실험실 환경에서 가운데 보이는 T자형 미로을 왔다갔다 할때 특정 위치에서 활성화되는 세포라는 거죠. 우리 사람으로 치면, 집에서 거실 쇼파에 있을때 활성화되는 세포,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을때 활성화되는 세포가 해마에 포진해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런던 택시 운전사에 관한 연구를 보면 복잡한 런던이 골목을 이리저리 누비고 다니는 택시 운전사의 해마가 일반인보다 크다고 되어 있죠. 그런곳에서 네비게이션도 없던 시절부터 오랜시절 운전해오신 베테랑들에게는 장소세포가 많이 필요했나봅니다.

해마는 단순히 장소만 기억하는 역할만 담당하지 않습니다. 저 위에서 언급했던 H.M.의 경우, 메멘토의 경우처럼 타인에 대한 기억도 저장하게 되는데요. 그와 관련한 멋진 연구가 여기 있습니다.

(출처: http://www.nature.com/nature/journal/v435/n7045/full/nature03687.html, Invariant visual representation by single neurons in the human brain, 2005, Nature)

진단 및 치료목적으로 해마와 그 인접부위에 전극을 삽입한 뇌전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입니다. 이 환자의 경우 제니퍼 애니스톤이라는 특정인물에만 반응하는 세포가 있었는데요. 동명이인이나 다른 여성 사진에는 반응하지 않았고, 웃프게도 브래드피트와 애니스톤이 함께 있는 사진에도 반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ㅡ,.ㅡ; 

물론 이렇게 발견된 현상은 단순히 세포에 사람얼굴이나 특정장소가 저장된다기 보다는 여러 신경 세포의 활동의 조합, 즉 패턴의 형태가 기억을 표상할 것으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장소세포 또는 할머니세포, 제니퍼 애니스톤 세포라는 것은 결국 그 패턴을 이루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수많은 신경세포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게 생각을 하고 해마와 그 인접부위에 관해 더 실험, 연구를 하다가 발견된 것이 격자세포, Grid cell입니다. 결혼해서 같이 살면서 연구도 같이 하시는 Moser부부가 발견했죠. 격자세포란

(출처: 문명 홈페이지 캡처, 문명하셨습니다의 그 문명5)

저 게임 상의 유닛처럼, 격자를 하나씩 이동할때 마다 활성화되는 세포를 말합니다. 이 격자세포는 해마로 정보를 보낸다고 알려진 Entorhinal cortex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출처: http://www.ucl.ac.uk/news/news-articles/1001/10012001)(출처: Buzsáki, György, and Edvard I. Moser. "Memory, navigation and theta rhythm in the hippocampal-entorhinal system." Nature neuroscience 16.2 (2013): 130-138.)

실제로 격자세포를 실험적으로 기록하면 위의 왼쪽 그림처럼 됩니다. 쥐가 쥐장안을 자유롭게 돌아 다닌  흔적이 검은색 실선입니다. 그리고 그 실선 위에 기록하고 있는 세포가 활성되었을때 빨간 점을 찍으면 저런 육각형의 격자 모양이 생기는 거죠. 이렇게 기록한 결과에서 위치에 따른 신경세포의 활성화되는 빈도를 색깔(높을 수록 빨간색, 낮을수록 파란색)로 표현한 것이 오른쪽의 상단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Entorhinal cortex라는 피질의 해부학적 위치에 따라 격자세포가 기록되는 거리 간격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Dorsal은 등쪽을 의미하는데, 이 곳의 격자세포들은 훨씬 촘촘한 간격에서 활성화되죠. Ventral이라고 되어 있는 배쪽의 격자세포는 조금 더 넉넉한 공간에서 활성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 세포마다 기록되는 육각형 격자의 각도가 달라지면서 공간 상의 X,Y위치를 훨씬 자세하고 촘촘하게 인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 격자공간에 대한 좌표를 처리해서 해마로 보내면 해마의 장소세포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렇듯 해마와 그 인접부위는 기억과 관련되어, 신경과학이나 심리학 분야에서는 아주 핫한 곳이었습니다. 그런 부위에서 우리의 기억을 표상하는 두뇌의 기전을 신경세포 수준에서 발견하고 증명한 장소세포와 격자세포에 관한 연구는 이번 노벨상 수상에 전혀 손색이 없는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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